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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과 거리의 ‘미쓰백’ 이야기 (영화 미쓰백 후기)

관리자
2018-10-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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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를 꼭 챙겨보는 편이 아니라 주인공 한지민을 본 기억이 너무 오래전이다. 찾아보니 10년도 지났다, 이서진씨가 정조대왕으로 나왔던 드라마 이산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정조의 후궁을 연기를 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니 진짜 오래전 일이다.

영화 미쓰백은 아동학대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해서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마도 정신과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도 티켓을 사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주인공 미쓰백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지만 오히려 살인미수 혐의로 복역한 소위 전과자다.알코올중독인 그의 어머니는 술 취한 상태에서 어린 딸을 폭행하는 일이 있자 자책하면서 자신에서 딸이 벗어나는 길이 유일한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고 딸을 버리고 혼자 지내는 삶을 선택한다. 출소한 미쓰백은 과거 살인미수로 복역할 때 자신을 체포한 형사 장섭의 관심과 도움이 있지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오히려 추운 겨울 차가운 세차장과 마사지 샵에서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미쓰백이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우연히 부모에게 학대 받은 아이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 분노 그리고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 학대를 반복하는 부모의 잔인성과 냉혹함, 무관심한 이웃들과 사회 시스템 그리고 미쓰백과 아이를 돕는 또 다른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영 시간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정신과 의사로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학대에 대한 고통스런 이야기라 새로울 것이 없지만, 스크린을 통해 눈으로 목도하는 장면은 또 다른 감정과 생각을 일으켰다. 영화의 힘이리라.



1. 학대와 트라우마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진료실을 찾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증가하는 각종 사회적 스트레스도 원인이겠지만, 그 동안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편견 때문에 정신과를 찾지 못했던 분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어 찾기 때문에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분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릴 때 부모의 폭력 경험을 자주 듣게 된다. 술 문제가 있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서로 싸우는 것을 경험하거나, 자녀들도 직접적인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또는 신체적인 폭행은 아니지만 언어와 감정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피해 가족들과 자녀는 세상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언제든지 주먹이 날아오고 그릇이 깨지며,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는 위험하고 불안한 곳이라는 신념이 그들의 뇌세포와 몸세포에 새겨진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실제 해마, 편도 등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세포에 영향을 주어서 시간이 지났지만 유사한 자극만 와도 바로 과거 그 시간, 그 장면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왜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냐 말해도 소용이 없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항상 불안해하는 모습은 남아 있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견디지 못해 고통 중에 진료실를 찾는 것이다. 즉, 학대와 트라우마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 되는 것이다.


2. 무관심한 이웃 사람들


미쓰백을 보면서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몇 군데 있었다. 그 중 몇 장면은 이렇다. 누가 봐도 학대를 당한 처참한 모습의 아이가 길거리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동네 어른들은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심지어 병원 응급실에 가거나, 경찰서를 찾아도 무관심하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 무관심한 이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고, 우리 사회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는 중앙아동보호 전문기관 등 국가기관이 학대를 받은 아동과 가족을 지키고 돌보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학대를 의심할 만한 상황을 목격한 기관 종사자들은 신고할 법적 의무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까운 이웃들의 관심과 신고가 절실히 필요하며, 관련 기관은 철저하게 신고자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3. 상처의 치유


미쓰백은 학대 피해자인 지은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투영한다. 지은이를 만난 후 잊고 싶었던 과거가 떠올라 밤새 뒤척이고 흐느낀다. 결국은 아이의 상처 속에 비쳐진 자신의 상처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지은이와 놀이공원을 함께 가고, 따듯한 옷을 사주면서 지은이를 돌보지만, 사실 어릴 때 상처 받은 어린 상아 (미쓰백) 자신을 스스로 돌보기 시작한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지은이는 학대 받은 두려운 장소인 욕실에서 자신의 상처를 미쓰백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미쓰백은 자신의 등에 난 상처를 보여 주며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치유를 시작한다.

미쓰백이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나누고 스스로 치유하려는 용기를 내면서 지은이를 도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건 없이 관심과 사랑을 전해 준 형사 장섭이 있었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상처 속에 갇힌 미쓰백이 지은이를 통해 스스로와 지은이를 함께 치유해 나가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장섭과 같은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4. 형사 장섭과 그 가족


만약 문제가 생길 때 마다 해결사 역할을 한 형사 장섭이가 미쓰백의 옆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보면 미쓰백이 출소 후 혼자만의 힘으로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나갔다면 더 영화스러웠다고 볼 수도 있겠다. 더 멋지고 극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엄청난 트라우마로 스스로는 불가능한 치유의 과정을 형사 장섭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장섭과 그의 누나와 같은 보통 이웃들이 있었기에 미쓰백과 지은이가 회복될 수 있었다는 점이 더 현실에 가깝다. 무관심한 다수의 이웃들이 있지만 약자와 함께 연대하며 돕는 역할을 하는 소수의 평범한 이웃 또한 존재하기에 그것이 유일한 희망의 근거가 된다.



5. 같은 상처, 다른 해법


미쓰백과 지은이 역할을 한 주인공의 연기도 빼어나지만, 조연들의 연기는 정말 말 그대로 리얼하다. 특히 밥도 안 먹고 일도 안하고 지저분한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하는 지은이 아버지와 동거녀는 악역 케릭터를 시종일관 잘 유지하였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 같은 두 사람의 잔인함과 냉혹함은 영화적으로 꼭 필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지은이를 폭행하고 학대하는 장면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겠지만 오히려 감독이 많이 자제한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은 훨씬 더 잔인하고 냉혹한지만 관객들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을 절제한 것처럼 보였다.


피도 안 나올 것 같은 지은이 아버지와 동거녀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 경찰이 그 아버지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지은이 아버지의 말은 그도 역시 어릴 때 가정 폭력의 희생자임을 보여준다. ‘맞고 커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 왜 내가 애 새끼일 땐 무시하다가..!’


폭력과 학대 그리고 방임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 중에서 성인이 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건강하게 사는 분들도 보았다, 하지만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감정조절의 어려움, 우울과 불안, 대인관계의 갈등을 경험하면서 고통 속에 있거나, 알코올이나 다른 중독 문제를 가지거나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대물림되는 폭력과 희생.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성인이 된 자신 스스로 어릴 때 상처를 안아주며 돌보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돕는 이웃들의 연대의 힘으로 가능하다. 

또 다른 미쓰백과 지은이는 여전히 진료실에, 그리고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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